필자의 뇌피셜과 약간의 캐붕, 각색 등등이 듬뿍 버무려져 있습니다. 오피셜 설정도 섞어서 쓰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2차 창작이므로 그냥 제 글 내에서만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밀레시안의 베이스는 제 아들내미입니다. 이름이 나옵니다 ㅇㅅ<
G21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래를 보고자 하는 초대 단장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밀레시안이 그와의 가느다란 연결을 조심스럽게 부여잡은 상태에서 천천히 도보로 에린을 누비고 다닌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가 원한 것은 큰 마을과 도시의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눠달라는 것이었지만 밀레시안은 친절한 호구 정신을 발휘하여 그가 바라기는 했으나 굳이 해주지는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까지 충실하게 이행해주고 있었다.
그의 시점에서는 미래인 에린을 일일이 도보로 돌아다니며 풍경을 보여주거나 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돌아다니는 다양한 여행자들과 대화를 하거나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며 이야기를 듣는 등 가능하면 그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초대 단장은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도와줄 줄은 몰랐다며 겸연쩍어했으나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라는 말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서 묵묵히 밀레시안이 보여주는 미래의 에린과 미래의 사람들과 미래의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풍경을 즐기고 선지자들을 구속한 상태임에도 출몰하는 변이된 동물들과 사도를 퇴치하며 울라 대륙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어린 기사들의 추천으로 배를 타고 이리아로 건너가는 일정이 이어졌다.
배를 타고 건너와 켈라 베이스 캠프에 도착해보니 최상급 그랑 블라고를 구해서 찾아왔다는 멀린과의 짧은 캠프를 즐기고, 척박한 사막과 사막 건너에 흐르는 강과 고원, 그리고 다시 사막을 넘으며 길 잃은 엘프가 갇혀있는 관을 발견하면 필리아로 가는 길이니 겸사겸사 구조하며 거침없이 밀레시안은 발걸음을 옮겼다.
길 잃은 엘프들과 함께 도착한 필리아에서 카스타네아를 비롯한 엘프들과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협곡을 지나 사자들이 울부짖는 사바나를 건너 다시 하나 강을 넘어 코르에 닿았고 코르에서도 무슨 일은 없었는지 필요한 도움은 없는지 챙긴 다음 강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여정을 이어나갔다.
험준한 산악지대를 지나 하얀 눈이 얼어붙어 있는 계곡을 건너고 얼어붙은 강을 조심스레 발 디뎌 넘어가고 강인한 자이언트들이 살아가는 마을 발레스에 도착하여 크루크를 비롯한 자이언트들과도 이야기를 나눈 뒤 잠시의 휴식 후 이리아를 마저 한 바퀴 돌기 위해 밀레시안이 햇빛이 하얗게 부스러지는 설원 위에 캠프 키트로 캠프를 설치해 안에서 불을 쬐고 있을 때, 단장의 검에서 교감의 진동이 부드럽게 울려왔다.
그에 따라 밀레시안은 검에 의식을 집중했고 이윽고 익숙한 감각이 덮쳐오는 느낌과 함께 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피비엔테…, 지금까지의 상황은… 잘 보았네. …… 그렇군…, 그래…. 친절하게 베풀어준 호의 덕분에 아주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네.]
먼 미래도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다르지는 않다, 아튼 시미니 대신 라이미라크가 존중받으며 서로를 믿고 위기에 대항하고 있다는 등의 말이 들려오다가 잠시의 침묵이 맴돈 끝에 침묵을 가르고 말이 이어진다.
[자네는…, 정말 많은 이들에게 빛이 되는 자라는 것을 알겠네.]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이네요. 적어도 제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까요."
[…?]
"…….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제 이야기는 안 해드린거 같네요. 아 물론 여태 교감을 유지하고 계셨으니까 굳이 들으실 필요는 없지만, 더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시다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자네에게서 넘칠 정도의 호의를 받았으니… 나는 괜찮다네.]
티 나게 이야기를 돌린다는 걸 눈치챘지만, 초대 단장은 밀레시안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겨 제안에 수긍을 표했고 그러한 그의 수긍에 밀레시안은 호박색 눈을 곱게 접어 흐리게 웃으며 찬찬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놓기 시작했다.
처음 이 세계에와서 싸우는 것도 뭣도 잘 몰라서 여우에게도 쩔쩔매고 굴렀던 것, 어느 정도 싸우는 방법을 배우고 나니 여신의 부름이 들려와 거기에서부터 이런저런 일을 시작했던 것, 한사람과 치명적으로 어긋나 계속 후회했던 것, 결국은 등을 돌리게 되었던 한 사람 등의 자신이 걸어왔던 여정의 이야기를.
"저는…, 저는 그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네요. 왜 그렇게 돼야 했었는지 알 수 없어요. 왜 그렇게 끝나야 했을까요. 그들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저는 이 세계에 오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요. 미안해요, 이런 약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자네….]
"헛소리 같은 이야기지만, 저는 진짜 죽음을 느껴본 적이 있어요. 여기에서 겪은 일시적인 죽음이 아니라 하나뿐인 목숨이 꺼져가는 그런 죽음을. 이 세계로 건너오기 전의 기억은 흐릿하고 구멍투성이이지만, 그것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 죽어서 여기에 왔던 거예요. 그래서 저는… 차마 돌아갈 곳이 있지 않느냐는 타르라크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것은제가꼭꼭감추어왔던비밀이자두려움이고공포였으니까."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자신의 감정에 매몰된 것인지 단장의 말도 듣지 않고 밀레시안은 이제 거의 흐느끼듯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죽음의 감각은 정말로 끔찍했어요. 저 자신이 아주 새카만 늪 같은 곳에 던져져서 무언가 거대한 것에 빨려 들어가 하나씩 사라져버리는 느낌이었지요. 그런 걸 다른 사람들이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무서워져서 죽지 않게 된 제 몸을 던져왔던 건데 대체 어디에서부터 뒤틀려버린 걸까요. 언젠가저도다시그리로돌아가야한다는게너무무서워요. 이 삶도 진정으로 영원하지 않을 테니까. 저는 결국 이방인이고 여행자이죠. 여행자는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해요. 저의 경우에는 그 제자리가 이제는 죽음이 되었을 뿐이지요."
[…….]
"정말로 미안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당신은 제가 보아왔던 그 누구보다 강한데다가 과거의 사람이니까 저도 모르게 이런 이야기까지 해버렸나봐요. 미안해요. 이런 이야기는 잊어주세요. 이건 결국 제가 온전히 짊어져야 할 제 몫이니까요. 그냥 고해를 들었다 생각하고 잊어주세요. 제가 아는 사제와 당신의 역할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신을 믿는 자로서 부탁드립니다."
밀레시안의 말이 끝나고 오랜 침묵 끝에 초대 단장에게서 긍정의 답이 돌아오고 서로에게 휴식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을 남긴 채 교감의 기운은 사라졌다. 밀레시안은 넘쳐 흐른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캠프 바닥에 쓰러져 그저 타오르는 불길의 온기를 느꼈다. 바깥에서는 날카로운 칼바람이 흐르고 맑은 하늘에 별이 총총히 빛을 뿌리는 밤이었다.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고통스럽게 교감 너머의 나에게로 고해했던 그 말들을…. 그러니… 절 내버려 두십시오. 많은 것이 바뀌진 않을 겁니다."
톨비쉬가 속삭이듯 말을 건넨 순간 밀레시안은 생각했다. 잊으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 왜 기억하고 있냐고. 역시 톨비쉬를 내버려 둘 수 없겠다고 생각한 밀레시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의지가 충만했다.